[이상한 영화] “당신 생애 첫 극장영화 어떤 영화로 기억하세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몇 번 언급했듯이 나는 중고등학교 특별활동을 거의 영화부에서 보냈다. 영화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영화를 보는 그 시간에 보장되는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120여 분의 그 시간은 공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다른 시간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 시간에 굳이 영화를 보지 않고 몽상에 몰두하기도 했고, 그 몽상이 지나 잠이 들기도 하고 거의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사실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은 독서부나 도서부였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나 받을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느꼈다. 가고 싶어도 항상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경쟁률도 대단했고.그래서 차선으로 영화부에 갈 수밖에 없었다. 선호하는 특별활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앞서 말했듯이 학교에서 비디오로 영화를 봤을 때는 넓은 나만의 여유가 가득했으니까. 그러다 가끔 한 번 정도 토요일 극장에 직관하러 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는 다른 생각은커녕 꽤 집중력 있게 영화를 봤다. 지금도 그때 직관했던 영화들이 다 생각날 정도지만 아무래도 ‘첫 영화’만큼은 아닐 것이다. 반대로 여러분에게 물어보면 당신의 생애 첫 극장 영화는 무엇이고 어떤 영화라고 기억하는가? 영화 리뷰를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 알파로 돌아와 보는 시간, 드디어 나의 첫 영화 리뷰, 하마터면 내 인생 영화가 될 뻔했을지도 모르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이야기를 해보자.

오욕과 고통의 세월을 딛고 통일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한 시기는 2000년으로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였는데 기억이 맞는다면 아마 부천 송내동에 있는 ‘씨네시마’, 옛날 뉴코아 중동점이었고 현재는 쇼핑몰 투나였던 이곳에 영화관이 있었다. 지금은 멀티플렉스에 밀려 없어진 지 오래고 유베이스라는 웬콜센터가 건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나는데 어쨌든 거기서 이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영화에 대해 할 말이 없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구체화하고 그 당시 추억을 활성화하기 위해 이 정도의 문장을 소요했다.시간을 더 뒤로 미루고 유치원까지 내려오면 다른 건 다 흐려지더라도 너희 손으로 저 휴전선을 꼭 끊어버리라고 손짓 동작으로 통일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이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 진영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단지 통일을 열망했던 사람들의 당시 심정이 그랬던 것이다. 우리 세대에서는 통일을 보기 어려우니 너희 세대에서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요청이었다. 그 당시에는 오히려 우리 소원은 통일 같은 노래가 건전가요였고, 1970년대에는 74남북공동성명 같은 빅 이벤트가 벌어지기도 했으니까.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그 통일의 방법론이 매우 단순하게 제시된다. 지뢰를 해체해 자신을 구한 뒤 송강호와 인연이 생긴 이병헌은 GP 초소에서 담배 등 선물을 돌에 묶어 던지며 서신도 교환하고 약간의 갈등 끝에 경계선을 넘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넌다. 이는 신하균의 장난으로 일어난 일이었지만, 이들과 금세 친해져서는 후임병 김태우까지 유인해 함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넌다. 처음에만 어렵고 그 행위가 한두 번을 넘어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남북 병사들끼리 서로 즐겁게 닭싸움까지 할 수 있는 사이로 발전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지만 통일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던 당시 중학생 입장에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임에 틀림없다.이제 와서 생각하면 아주 재미있는 장면임에 틀림없다. 신하균은 이병헌이 처음 초소를 찾았을 때 분단의 반세기! 그 오욕과 고통의 세월을 뛰어넘어 통일의 실마리를 넘어온 이수혁 병장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라고 말하고 이병헌 또한 김태우에게 신하균이 한 말을 그대로 활용해 그를 설득한다. 이처럼 경계선을 적극적으로 넘는 사람은 남한 병사뿐이고 북한 병사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남북이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은 북한보다 남한이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메시지인 동시에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도 함께 비유하고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계속된다…왜일까?

남북 병사들이 우정을 나누는 시퀀스가 워낙 명장면이어서 <공동경비구역 JSA>의 결말은 엄연한 비극이다.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도 임기 내에 통일될 리가 없는데 남북 병사 4명이 이념이고 아무 생각 없이 우리끼리 즐겁다고 하루아침에 통일할 수 있겠는가. 북한 장교 김명수의 등장으로 네 사람의 위기가 고조됐을 때 이병헌은 송강호에게 선배도 아무것도 필요 없다. 결국 우리는 적”이라고 말하며 이영애의 추리로 사건의 전말이 이병헌의 입을 통해 밝혀지려는 순간 “야, 이 칸나야! 나는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알고 있네? 조선 인민의 본모습을 보여줬다!”며 이병헌을 밀어내고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송강호의 모습에서 갈라진 한반도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특히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이영애는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프로파일러이자 중립국 출신이라는 설정으로 관전자의 성격을 띠고 있다.즉 박찬욱 감독은 이영애를 심판석에 세워놓고 남한이나 북한이나 어느 한쪽에 치우친 시선으로 보려고 하지 않고 중도를 걷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물론 이영애가 한반도에 서지 못하는 중립국 출신이 된 배경도 비극적인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곳에는 초점을 최대한 적게 가져갔고 이병헌 김태우 송강호 신하균 네 남북 병사 사이에서 벌어진 비극을 더욱 조명하고자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광이라는 김정일이 좋아했던 영화가 <공동경비구역 JSA>였고, 특히 이영애를 그만큼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공동경비구역 JSA>가 공개될 당시 김대중이 김정일을 만나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그리고 정부가 한 차례 바뀐 2007년 노무현이 김정일을 만나 발표된 104 남북공동선언까지 이어진 남북관계의 훈풍 속에서 <공동경비구역 JSA>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 발상은 너무나 순진해서 우리 시대에 통일 따위는 헛소리로 간주되거나 아주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 일쑤이기 때문이다.시대가 흐를수록 분위기는 경색될 수밖에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희생을 담보로 가정의 평화, 나아가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한 가치관이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손해보고 싶지 않고 집단보다는 나 개인의 성취가 더 중요한 가치로 우선되는데 통일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느껴질 수 있을까. 그동안 북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시신은 방부처리돼 금수산에 전시됐으며 그 뒤를 이어 세계에서 가장 젊은 독재자가 되면서 체제 변화가 일어났다. 더욱이 기상천외한 숙청 방식으로 자신의 삼촌을 죽이면서 권력을 박탈하는 등 상식의 범주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어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아 일관된 대북정책을 세우기 어렵다. 이처럼 진지하게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더 이상 가치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이런 발상도 있었구나’라고 즐기는 수준의 팝콘 무비로 전락할 뿐이다.

명성을 얻었지만 가장 박찬욱답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은 어떻게 보면 한국의 쿠엔틴 타란티노라고 할 수 있다. 영화를 전공한 영화학도 출신도 아니고 그저 단순한 영화 덕후로 입문해 비디오 가게에서 일한 영화 인생의 시작 과정이 평행세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슷하고 폭력적이면서도 그 폭력의 특성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사용하는 수법이 실로 수준급이라는 것도 비슷하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B급을 표방하는 키치한 정서라면 박찬욱은 광적 집착과 변태적 페티시로 보인다는 게 다소 차이일 것이다.다만 쿠엔틴 타란티노가 ‘저수지의 개들’로 입봉하고 두 번째 영화 ‘펄프픽션’으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는 등 시작부터 승승장구했던 데 비해 박찬욱의 시작은 지금의 명성과 비교해도 초라하다. 이승철 주연의 달은. ‘태양이 꾸는 꿈’이라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영화로 데뷔해 흥행 참패하며 오랜 무명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그에게 의미 있는 흥행 스코어와 비평적 점수까지 모두 우상향 곡선을 그리게 한 영화가 바로 <공동경비구역 JSA>였다. 내가 감독주의에 입각해 영화를 보게 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감독님의 이름을 외우면서 영화를 찾아보게 된 감독은 김기덕 그리고 박찬욱이었다.

그만큼 <공동경비구역 JSA>는 별거 아닌 내 인생에서 꽤 큰 영향을 미친 영화가 됐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영화 채널에서 그의 이름이 눈에 띄고 ‘어 박찬욱?’이라는 생각에 밤늦은 시간 한숨도 못 자고 설레는 마음으로 본 영화가 바로 <올드보이>였고, <공동경비구역 JSA>에 이어 또 다른 충격을 받게 됐다. 그리고 그날 밤 잠을 전혀 못 잤고 블로그에 영화에 대한 느낌도 따로 적어놓을 정도로 꽤 감명깊게 봤다. 마니아적 즐거움이 무엇인지 잘 아는 감독이라 할 수 있다.〈공동경비구역 JSA〉가 박찬욱에게 감독으로서의 명성과 그에 따른 부를 안겨준 영화가 됐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보면 가장 이질적인 영화라는 것도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해준다. 박찬욱 감독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원전을 바탕으로 영화사나 제작자의 기획에 따라 찍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가 보여주는 자신의 콘텐츠 영향력이 워낙 막강해졌고, 그래서 필모그래피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영화임에도 포털사이트 영화정보 페이지에서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영화를 다시 만들어달라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는다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 이런 식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글쎄 그렇게도 생각해볼게.

총평

리뷰로 쓸까 말까 생각해본 지 오래된 영화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나까지 같은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따로 쓰지 않았지만 인생에서 처음 보는 영화도 중요하지만 극장에서 처음 보는 영화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드디어 이 리뷰를 쓰게 됐다. 극장에서 얻을 수 있는 영화의 감동은 집에서 느끼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니까. IP 싸움으로 OTT가 범람해 좋은 콘텐츠 자체를 선별하기가 매우 어려운 지금 극장에서 생애 첫 영화를 보고 싶다면 <공동경비구역 JSA>가 아니더라도 박찬욱의 영화를 신중하게 추천해보고 싶다.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의 총체가 무엇인지 너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으니까. 물론 한 번 보고 이해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큰 후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공동경비구역 JSA 감독 박찬욱 출연 이영애 이병헌 송강호 김태우 신하균 개봉 2000.09./2015.10.15 재개봉No language de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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