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항공 123편락 사고 JAL12 3편은 하네다공항을 18시 정각에 출발해 이륙 후 남서쪽 방향으로 이즈반도에서 서쪽으로 순항, 와카야마현 상공에서 북서쪽으로 선회해 이타미공항에 18시 56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18시04분 승객과 승무원 524명을 태운 JA8119호는 JAL123편으로 정각보다 4분 늦게 하네다공항 18번 구역을 출발해 18시12분 활주로에서 이륙했다.
기장-다카하마 마사미(49세) 부조 종사-사사키 유타카(39세) 항공기관사-후쿠다 히로시(36세) CVR(조종실 음성기록장치)에는 18시 24분 12초부터 18시 56분 28초까지 32분 16초간의 음성이 남아 있었다.
18시24분35초경 이즈반도 남부 동해 상공을 순항, 고도 24000피트(7000m)를 향해 상승 중 23,900피트를 통과하면 충격음이 발생한다.
기장 : [큰일 났네, 뭔가 폭발했네] 직후 자동비행이 해체되고 기체점검이 이뤄졌으며, 4개의 엔진, 랜딩, 기어 등에 이상이 없었다.
항공기관사: 하이드로 프레셔(유압압력)를 볼래요?”
25분 기장은 스쿼크 7700(비상상태)을 발신하고 도쿄공항 교통관제부로 하네다로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무선교신 뒤 기장이 부조종사에게 기울지 말라, 매뉴얼이니까라고 되돌리라고 지시. 그러나 부조종사는 돌아오지 않습니다라고 답한다.
수직 꼬리날개는 수직안정판 밑부분을 남겨놓고 파괴됐고 보조 동력장치도 유실돼 유압조종시스템 등 4개 계통 모두 파손된 결과 조종시스템에 필요한 유압작동유가 모두 유출돼 유압을 이용해 승강타, 보조익의 조타가 불가능해졌다.
27분 이상 발생한 지 약 3분도 안 돼 항공기 운전사가 유압이 모두 유실이라며 같은 시각 객실의 기압이 감소하면서 경고음이 울리자 어떻게든 저공으로 강하하려 했다. 그러나 거의 조종 불가 상태인 기체에는 장주기 운동과 더치 롤이 발생해 피칭, 요잉, 롤링을 반복한다.
31분40초. 항공기관사는 승무원으로부터 객실 수납공간이 파손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33분 기관사가 긴급강하와 산소마스크 착용을 제안한다.
35분 하네다 공항의 JAL운항관리소와의 교신으로 기관사는 [R5도어가 파손되었습니다]와 연락을 취한다.
37분 기장이 강하를 지시했지만 기수는 1000여 m로 상승과 강하를 반복하는 등 불안정한 비행이 계속됐다.
38분 랜딩기어를 내려오려 했지만 유압이 없어 내려오지 못한다.
40분 기관사의 제안으로 백업시스템을 이용해 랜딩기어를 내려오는 데 성공한다. 기체는, 후지산의 동쪽 기슭으로 북상해, 야마나카현 상공에서 급격한 우선회동을 하면서 고도 2만 2천 피트(6천7백 미터)에서 6천 피트(1만 8백 미터)로 강하한다. 이후 하네다 방면으로 향하다 사이타마 상공에서 좌선회해 군마 현 남서부 산악지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기체의 흔들림은 약간 줄어서 안정되었다
46분 기장: “이건 실수일지도 모르겠군” 위험을 직감.
47분, 기장의 외침과 다급한 대화가 수차례 기록됐다. 이 시체는 6천 피트 전후로 비행한다.
48분 기관사가 조종하는 조종사에게 힘내라고 격려하며 기장의 기수를 내리라는 지시가 이어졌다.
49분기가 39도로 상승하고 속도는 108노트(200km)까지 떨어지며 실리 경보장치가 작동한다. 이때부터 기체의 안정감이 무너져 몇 차례 기수가 오르락내리락했다 반복했다.
50분’ 속도가 나요. 속도가라고 부조종사는 말했고 기장은 빨리 가자고 격려하는가 하면 기수를 낮추라고 지시했지만 자꾸 속도가 바뀌어 불안정한 비행이 계속됐다.
51분 계속되는 장주기 운동을 피하기 위해 전력으로 플랩(보조 날개)이 나오고 53분경부터 기체가 안정되기 시작한다.
54분 조종사는 시야를 잃고 하네다에 물어 사이타마 현에서 25마일(40km) 서쪽 지점에 있다고 묻는다. 그 사이 잠시 안정됐던 기체 기수가 다시 상승해 속도가 180노트(330km)까지 떨어졌다. 출력과 조종간 조작으로 기수를 낮추지만 내려가지 않았다.
55분 01초 기장은 부조종사에게 플랩을 내릴 수 있느냐고 질문하며 10도 정도 가능하다고 답한다.
55분 12초 플랩을 낮추던 중 남서풍을 만나 기체가 오른쪽으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55분 15초부터 기장은 기수를 낮추라고 지시한다.
55분 45초 앗 소리가 난다.
55분50초, 부조종사 플랩업, 플랩업, 플랩업을 외쳤고 곧 플랩이 올라갔다 내려간다. 이때 고도는 10,000피트(3000m)였다.
56분 기장이 파워와 플랩을 올리라고 지시해 7초에는 기수가 36도나 내려갔고 롤 각도도 최대 80도를 넘었다. 기장은 끝까지 기수 올려, 파워라고 지시했다.
[추락] 조종사들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기체는 계속 강하를 해 56분 14초에 GPWS(대지 접근 경보장치)가 작동한다. 17초쯤 잠시 기수를 들어 상승하기 시작하지만 56분23초에 우주날개와 기체 뒷부분이 산등성이의 나무와 부딪쳐 충격으로 4엔진이 탈락한다. 이때 속도는 340노트(630km) 이상이나 됐다.
접촉 후 잠시 상승했으나 기체는 크게 기수를 내리고 오른쪽으로 70도 기울었다. 56분26초에는 우주익 선단이 능선에 부딪혀 충격으로 우주익 선단과 수직, 수평 미익, 3엔진이 탈락한다. 56분 28초면 기체 뒷부분이 분리된다. 18시 56분 30초에 다카마가하라 산등성이에 거의 뒤집힌 상태에서 추락한다. CVR에는 23초와 26초경에 충격음이 기록되었다.
추락한 기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고 떨어진 양 날개는 불에 휩싸였다. 한편 56분 28초로 분리된 객실 뒷부분과 산등성이를 넘어 여면으로 추락했다.
객실 뒤쪽은 능선에 충격을 받아 평행에 가까운 각도로 착지해 나무를 차례차례 눕히며 감속해 추락했고 부위도 가벼운 수준의 파손이나 화재도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좌석에 앉아 있던 승객 4명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지상과의 교신]123편과 도쿄 ACC(도쿄 공항 교신 관제부), 도쿄 APC(도쿄 잔압 관제소), 횡관제(요코타 기지)의 교신 내용이다.
18시 24분 47초 : JAL123편이 긴급구난신호[스쿼크 7700] 무선신호를 발신 도쿄ACC가 수신했다.
25분 21초:123편 기장이 이상발생 연락과 함께 하네다 공항으로의 귀환과 22,000피트(6,700m)로의 강하를 무선으로 요구, 도쿄 ACC는 이를 승낙한다. JAL123편은 이즈 반도에 레이더 유도를 요청한다. 관제부는 좌우 어느 쪽을 선회할 것인지를 묻고 기장은 우선회를 희망해 하네다 공항은 비상착륙을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27분 02초:도쿄 ACC가 123편에 긴급사태를 다시 확인하고 어떤 상태인지 묻는데 응답이 없었다. 이에 따라 도쿄ACC는 JAL 본사에 123편이 긴급 신호를 보낼 것임을 알린다.
28분31초 도쿄ACC는 123편에 정동쪽으로 향하라고 지시하지만 기장은 but now un control이라고 답한다. 도쿄 ACC의 이때 123편이 조종 불능이라는 것을 알고 관제실 스피커가 켜졌고 123편과 대응이 관제실 전체에 공유됐다.
31분 02초: 도쿄 ACC는 강하가 가능하냐고 묻자 123편은 강하 중이라고 답한다. 도쿄 ACC는 하네다 공항보다 가까운 나고야 공항에 비상착륙을 제안하지만 123편은 하네다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항공기와 지상 간 무선교신은 영어로 이뤄지지만 관제부는 123편 기장의 부담을 고려해 모국어의 일본어 사용을 허용한다.
33분 : JAL은 사내 무선으로 123편에 교신을 요청한다.
35분33초:123편에서 R5도어가 파손됐다는 연락 이후 이 시점에서 긴급 강하 중이니 나중에 호출할 때까지 무선을 청취해 달라고 요청하고 JAL은 이를 승낙한다.
40분 44초: 도쿄 ACC가 123편과 다른 항공기와의 교신을 분리하기 위해 전용 무선교신 주파수를 할당해 변경을 요구하지만 응답이 없었다.
41분54초: 반대로 123편을 제외한 모든 항공기에 대해 주파수를 변경하도록 요청하고 교신은 지시가 있을 때까지 피하도록 요청한다. 그러나 일부 항공기는 정상 주파수로 교신을 계속했고 관제부는 교신을 하는 항공기에 개별적으로 지시를 계속했다.
45분 36초 항공무선을 듣고 있던 요코타기지가 123편을 지원하기 위해 영어로 123편에 미 공군이 준비한 주파수로 변경을 요청하는데 123편에서 [Japan Air 123 uncontrolable]라고 대답한다. 도쿄 ACC가 “도쿄 APC와 교신하겠습니까”라고 묻자 123편은 “그대로 해 주세요”라고 답한다.
47분 10초 123편은 도쿄 ACC는 정동 방향으로 가도록 지시했고, “조종은 불가능한가요?”라고 묻자 123편은 “조종 불능”이라고 답한다.
49분 : JAL이 사내 무선으로 3분간 호출을 하지만 응답이 없었다.
53분 30초: 도쿄 ACC가 123편에 교신을 요청하지만 조종 불능이라는 답변만 받았다. 요코타 관제는 요코타 기지가 비상착륙을 받을 준비에 들어갔다고 통보한다.
53분 45초: 도쿄 ACC가 ‘주파수 119.7로 바꿔주세요’라고 도쿄 APC의 무선 주파수로 변경을 요청해 123편은 승인한다.
54분25초:123편은 도쿄 APC에 장소 확인을 요청했고, 하네다에서 55마일(89km) 북서쪽 구마가이시에서 25마일(40km)이라고 했다.
55분05초:도쿄APC는 일본어로 말하겠습니다. 하네다는 어프로치 레이디하고 있습니다. 또 요코타와 조정해 「요코타에서도 착륙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123편의 운전기사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것이 지상과의 마지막 교신이 되었다.
57분:요코타 관제는 123편에 본기는 요코타의 북서쪽 35마일(56km) 지점에 있어, 요코타 기지에 최우선으로 착륙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지만 도쿄 ACC도 123편에 요코타 기지의 주파수로의 변경을 요청하지만 123편은 이미 추락해 버렸다.
▲객실 상황=객실에는 충격음이 들린 직후 좌석마다 산소마스크가 내려져 기내 방송이 나왔다. 승객들은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산소마스크와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좌석에 앉아 있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펑 소리와 함께 하얀 안개 같은 것이 나왔지만 산소마스크를 쓰고 나니 안개가 사라졌다. 폭발음을 들은 직후 공포 상태가 아니라 다소 좋은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산소가 바닥났을 때 기체의 움직임이 커져 승무원도 서 있지 않을 정도였다. 18시 47분 이후에는 비상착륙에 대비해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기장-다카하마 마사미(49세) 부조 종사-사사키 유타카(39세) 항공기관사-후쿠다 히로시(36세) CVR(조종실 음성기록장치)에는 18시 24분 12초부터 18시 56분 28초까지 32분 16초간의 음성이 남아 있었다.
18시24분35초경 이즈반도 남부 동해 상공을 순항, 고도 24000피트(7000m)를 향해 상승 중 23,900피트를 통과하면 충격음이 발생한다.
기장 : [큰일 났네, 뭔가 폭발했네] 직후 자동비행이 해체되고 기체점검이 이뤄졌으며, 4개의 엔진, 랜딩, 기어 등에 이상이 없었다.
항공기관사: 하이드로 프레셔(유압압력)를 볼래요?”
25분 기장은 스쿼크 7700(비상상태)을 발신하고 도쿄공항 교통관제부로 하네다로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무선교신 뒤 기장이 부조종사에게 기울지 말라, 매뉴얼이니까라고 되돌리라고 지시. 그러나 부조종사는 돌아오지 않습니다라고 답한다.
수직 꼬리날개는 수직안정판 밑부분을 남겨놓고 파괴됐고 보조 동력장치도 유실돼 유압조종시스템 등 4개 계통 모두 파손된 결과 조종시스템에 필요한 유압작동유가 모두 유출돼 유압을 이용해 승강타, 보조익의 조타가 불가능해졌다.
27분 이상 발생한 지 약 3분도 안 돼 항공기 운전사가 유압이 모두 유실이라며 같은 시각 객실의 기압이 감소하면서 경고음이 울리자 어떻게든 저공으로 강하하려 했다. 그러나 거의 조종 불가 상태인 기체에는 장주기 운동과 더치 롤이 발생해 피칭, 요잉, 롤링을 반복한다.
31분40초. 항공기관사는 승무원으로부터 객실 수납공간이 파손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33분 기관사가 긴급강하와 산소마스크 착용을 제안한다.
35분 하네다 공항의 JAL운항관리소와의 교신으로 기관사는 [R5도어가 파손되었습니다]와 연락을 취한다.
37분 기장이 강하를 지시했지만 기수는 1000여 m로 상승과 강하를 반복하는 등 불안정한 비행이 계속됐다.
38분 랜딩기어를 내려오려 했지만 유압이 없어 내려오지 못한다.
40분 기관사의 제안으로 백업시스템을 이용해 랜딩기어를 내려오는 데 성공한다. 기체는, 후지산의 동쪽 기슭으로 북상해, 야마나카현 상공에서 급격한 우선회동을 하면서 고도 2만 2천 피트(6천7백 미터)에서 6천 피트(1만 8백 미터)로 강하한다. 이후 하네다 방면으로 향하다 사이타마 상공에서 좌선회해 군마 현 남서부 산악지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기체의 흔들림은 약간 줄어서 안정되었다
46분 기장: “이건 실수일지도 모르겠군” 위험을 직감.
47분, 기장의 외침과 다급한 대화가 수차례 기록됐다. 이 시체는 6천 피트 전후로 비행한다.
48분 기관사가 조종하는 조종사에게 힘내라고 격려하며 기장의 기수를 내리라는 지시가 이어졌다.
49분기가 39도로 상승하고 속도는 108노트(200km)까지 떨어지며 실리 경보장치가 작동한다. 이때부터 기체의 안정감이 무너져 몇 차례 기수가 오르락내리락했다 반복했다.
50분’ 속도가 나요. 속도가라고 부조종사는 말했고 기장은 빨리 가자고 격려하는가 하면 기수를 낮추라고 지시했지만 자꾸 속도가 바뀌어 불안정한 비행이 계속됐다.
51분 계속되는 장주기 운동을 피하기 위해 전력으로 플랩(보조 날개)이 나오고 53분경부터 기체가 안정되기 시작한다.
54분 조종사는 시야를 잃고 하네다에 물어 사이타마 현에서 25마일(40km) 서쪽 지점에 있다고 묻는다. 그 사이 잠시 안정됐던 기체 기수가 다시 상승해 속도가 180노트(330km)까지 떨어졌다. 출력과 조종간 조작으로 기수를 낮추지만 내려가지 않았다.
55분 01초 기장은 부조종사에게 플랩을 내릴 수 있느냐고 질문하며 10도 정도 가능하다고 답한다.
55분 12초 플랩을 낮추던 중 남서풍을 만나 기체가 오른쪽으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55분 15초부터 기장은 기수를 낮추라고 지시한다.
55분 45초 앗 소리가 난다.
55분50초, 부조종사 플랩업, 플랩업, 플랩업을 외쳤고 곧 플랩이 올라갔다 내려간다. 이때 고도는 10,000피트(3000m)였다.
56분 기장이 파워와 플랩을 올리라고 지시해 7초에는 기수가 36도나 내려갔고 롤 각도도 최대 80도를 넘었다. 기장은 끝까지 기수 올려, 파워라고 지시했다.
[추락] 조종사들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기체는 계속 강하를 해 56분 14초에 GPWS(대지 접근 경보장치)가 작동한다. 17초쯤 잠시 기수를 들어 상승하기 시작하지만 56분23초에 우주날개와 기체 뒷부분이 산등성이의 나무와 부딪쳐 충격으로 4엔진이 탈락한다. 이때 속도는 340노트(630km) 이상이나 됐다.
접촉 후 잠시 상승했으나 기체는 크게 기수를 내리고 오른쪽으로 70도 기울었다. 56분26초에는 우주익 선단이 능선에 부딪혀 충격으로 우주익 선단과 수직, 수평 미익, 3엔진이 탈락한다. 56분 28초면 기체 뒷부분이 분리된다. 18시 56분 30초에 다카마가하라 산등성이에 거의 뒤집힌 상태에서 추락한다. CVR에는 23초와 26초경에 충격음이 기록되었다.
추락한 기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고 떨어진 양 날개는 불에 휩싸였다. 한편 56분 28초로 분리된 객실 뒷부분과 산등성이를 넘어 여면으로 추락했다.
객실 뒤쪽은 능선에 충격을 받아 평행에 가까운 각도로 착지해 나무를 차례차례 눕히며 감속해 추락했고 부위도 가벼운 수준의 파손이나 화재도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좌석에 앉아 있던 승객 4명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지상과의 교신]123편과 도쿄 ACC(도쿄 공항 교신 관제부), 도쿄 APC(도쿄 잔압 관제소), 횡관제(요코타 기지)의 교신 내용이다.
18시 24분 47초 : JAL123편이 긴급구난신호[스쿼크 7700] 무선신호를 발신 도쿄ACC가 수신했다.
25분 21초:123편 기장이 이상발생 연락과 함께 하네다 공항으로의 귀환과 22,000피트(6,700m)로의 강하를 무선으로 요구, 도쿄 ACC는 이를 승낙한다. JAL123편은 이즈 반도에 레이더 유도를 요청한다. 관제부는 좌우 어느 쪽을 선회할 것인지를 묻고 기장은 우선회를 희망해 하네다 공항은 비상착륙을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27분 02초:도쿄 ACC가 123편에 긴급사태를 다시 확인하고 어떤 상태인지 묻는데 응답이 없었다. 이에 따라 도쿄ACC는 JAL 본사에 123편이 긴급 신호를 보낼 것임을 알린다.
28분31초 도쿄ACC는 123편에 정동쪽으로 향하라고 지시하지만 기장은 but now un control이라고 답한다. 도쿄 ACC의 이때 123편이 조종 불능이라는 것을 알고 관제실 스피커가 켜졌고 123편과 대응이 관제실 전체에 공유됐다.
31분 02초: 도쿄 ACC는 강하가 가능하냐고 묻자 123편은 강하 중이라고 답한다. 도쿄 ACC는 하네다 공항보다 가까운 나고야 공항에 비상착륙을 제안하지만 123편은 하네다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항공기와 지상 간 무선교신은 영어로 이뤄지지만 관제부는 123편 기장의 부담을 고려해 모국어의 일본어 사용을 허용한다.
33분 : JAL은 사내 무선으로 123편에 교신을 요청한다.
35분33초:123편에서 R5도어가 파손됐다는 연락 이후 이 시점에서 긴급 강하 중이니 나중에 호출할 때까지 무선을 청취해 달라고 요청하고 JAL은 이를 승낙한다.
40분 44초: 도쿄 ACC가 123편과 다른 항공기와의 교신을 분리하기 위해 전용 무선교신 주파수를 할당해 변경을 요구하지만 응답이 없었다.
41분54초: 반대로 123편을 제외한 모든 항공기에 대해 주파수를 변경하도록 요청하고 교신은 지시가 있을 때까지 피하도록 요청한다. 그러나 일부 항공기는 정상 주파수로 교신을 계속했고 관제부는 교신을 하는 항공기에 개별적으로 지시를 계속했다.
45분 36초 항공무선을 듣고 있던 요코타기지가 123편을 지원하기 위해 영어로 123편에 미 공군이 준비한 주파수로 변경을 요청하는데 123편에서 [Japan Air 123 uncontrolable]라고 대답한다. 도쿄 ACC가 “도쿄 APC와 교신하겠습니까”라고 묻자 123편은 “그대로 해 주세요”라고 답한다.
47분 10초 123편은 도쿄 ACC는 정동 방향으로 가도록 지시했고, “조종은 불가능한가요?”라고 묻자 123편은 “조종 불능”이라고 답한다.
49분 : JAL이 사내 무선으로 3분간 호출을 하지만 응답이 없었다.
53분 30초: 도쿄 ACC가 123편에 교신을 요청하지만 조종 불능이라는 답변만 받았다. 요코타 관제는 요코타 기지가 비상착륙을 받을 준비에 들어갔다고 통보한다.
53분 45초: 도쿄 ACC가 ‘주파수 119.7로 바꿔주세요’라고 도쿄 APC의 무선 주파수로 변경을 요청해 123편은 승인한다.
54분25초:123편은 도쿄 APC에 장소 확인을 요청했고, 하네다에서 55마일(89km) 북서쪽 구마가이시에서 25마일(40km)이라고 했다.
55분05초:도쿄APC는 일본어로 말하겠습니다. 하네다는 어프로치 레이디하고 있습니다. 또 요코타와 조정해 「요코타에서도 착륙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123편의 운전기사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것이 지상과의 마지막 교신이 되었다.
57분:요코타 관제는 123편에 본기는 요코타의 북서쪽 35마일(56km) 지점에 있어, 요코타 기지에 최우선으로 착륙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지만 도쿄 ACC도 123편에 요코타 기지의 주파수로의 변경을 요청하지만 123편은 이미 추락해 버렸다.
▲객실 상황=객실에는 충격음이 들린 직후 좌석마다 산소마스크가 내려져 기내 방송이 나왔다. 승객들은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산소마스크와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좌석에 앉아 있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펑 소리와 함께 하얀 안개 같은 것이 나왔지만 산소마스크를 쓰고 나니 안개가 사라졌다. 폭발음을 들은 직후 공포 상태가 아니라 다소 좋은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산소가 바닥났을 때 기체의 움직임이 커져 승무원도 서 있지 않을 정도였다. 18시 47분 이후에는 비상착륙에 대비해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도쿄항공국 도쿄공항사무소는 123편의 긴급사태 발생에 따라 도쿄구난조정본부를 개설해 123편이 하네다에 비상착륙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후 도쿄 관제부 레이더에서 사라지자 구난본부는 방위청 경찰청 소방청 해상보안청 등 관계기관에 신고해 123편을 수색했다.
19시 15분쯤 인근에 있던 미 공군의 C-130 수송기가 요코다 기지의 지령으로 근처를 수색, 현장 인근 산속에서 대화재를 발견한다.
19시 21분경 F-4 전투기 2대도 추락 현장에서 화재를 발견하고 상공 위치의 요코타 TACAN 방위 300도, 거리 32마일(51km)을 통보한다. 구난대는 2대의 헬기를 교대로 현장에 급파해 구난활동을 벌인 21시05분경 2차 출동대가 도착하지만 추락 현장은 거대한 화재가 발생하고 검은 연기와 야간이어서 고도에서 탐조등으로 비춰도 지상의 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20시 20분경 중고도까지 내려가 다시 강하 지점을 찾으라는 지시가 들어왔다. 그러나 소방차와 무선교신이 되지 않아 실패한다.
13일 오전 1시 이루마 기지로 돌아온 KV-107 헬기가 다시 현장에 도착한다. 화재 등의 상황은 2시간 전과 달라지지 않아 접근이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정찰을 계속해 접근 가능하다면 즉시 진입할 수 있는 체제를 준비한다.
13일 오전 6시 30분 구난대는 이루마 기지를 떠나 조난 현장 상공에 도착했다. 현장에는 수많은 검게 탄 시체와 잔해가 널려 있었다.
지상에서는 군마, 나가노, 사이타마의 각 현경이 추락 현장을 수색했다. 상공에서는 추락 현장이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원시림이었고 레이더와 TACAN의 측위 위치 오차와 캄캄한 밤이어서 추락 현장을 특정하기도 어려웠다.
20시 21분, 나가노현경이 검은 연기를 포착했다고 보고한다.
21시 39분 사이타마 나가노 경찰은 붉은 연기를 발견했으며 나가노 경찰은 12일 밤 추락 현장은 군마 현 쪽 깊은 산속에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장난 신고와 일본항공의 잘못된 발표로 정보가 엇갈리면서 수색은 혼란스러웠다.
그 결과 소방, 경찰과 항공자위대의 지상 수색대, 상공 자위대의 각 수색대 등 13일 아침까지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13일 오전 4시 30분 항공자위대 구난대의 추락 기체 재확인, 5시 10분 육상자위대 헬기의 기체 확인, 5시 37분 나가노현 헬기의 추락 현장 확인이 차례로 상공에서 이뤄졌다. 군마현 우에노쵸 촌장 쿠로사와 타케오(전 해군 소령)는, 텔레비전의 보도 영상을 보고, 현장이 마을내에 「칸노사와」라고 판단해, 지리감이 있는 소방대원에게 수색대의 안내를 받는다. 현장까지 얼룩조릿대가 무성하고 경사가 져 약 2km를 가는 데 1시간 30분이 걸리는 험준한 도로였다.
13일 오전 8시 30분 나가노 경찰 기동대원 2명과 오전 9시 육상자위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해 구난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육로 우에노 촌장 소방관과 군마현 기동대, 경시청 기동대, 소방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하고 마침내 본격적인 구난활동을 시작한다.
[생존자] 13일 오전 10시 45분 나가노 경찰의 기동대원이 칸노가와 제3지류에서 기체 후부의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발견한다. 생존자는 4명으로 발견 순서에 따라 비번인 승무원 26세 여성, 34세 여성과 8세 초등학생 딸, 12세 여중생 등이었다.
처음 발견된 비밀번호의 승무원은 잔해에 끼여 오른손만 꺼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두 번째인 주부는 승무원의 잔해를 치우다 발견했고 세 번째 초등학생으로 딸은 엄마 바로 옆에 하반신이 잔해에 끼여 누워 있었다. 여중생 4명은 승무원이 있던 곳에서 2m 떨어진 곳에서 물구나무 선 채 발견됐다. 모두 중상을 입었다.
의사 2명과 간호사 2명 등 모두 4명이 사고 현장에 경시청 헬기를 이용해 현장에 투입된다. 여자아이는 빈약했지만 나머지 3명은 비교적 양호했다. 승무원은 안면 좌창, 여중생은 오른쪽 손목, 왼쪽 하지 좌상, 전신 타박상을 입었다. 이후 20여 분간 생존자들을 헬기로 지상에서 끌어올려 병원으로 후송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4명의 생존자 외에는 즉사했거나 사망에 가까운 상태였다고 하나 생존자인 12세 여중생에 따르면 눈을 떴을 때 아버지와 누나는 살아 있었다고 한다. 또 추락 직후 주변에서 힘내라는 말과 구조대가 오지 않겠느냐는 비번인 승무원은 말을 건넸으나 곧 주위는 조용해졌다. 구출이 빨랐더라면 더 많은 인명을 구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기체 앞부분은 산등성이와 부딪쳐 부서져 있었으며 안에서 승객과 승무원들은 밖으로 튕겨져 나가 숨졌다. 대부분의 시신은 참혹한 상태였다. 또 화재로 인한 파손도 많았다. 한편 기체 뒷부분은 큰 충격을 피했고 화재도 없어 비교적 시신은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대형 헬기를 이용해 16일 15시 시신 수습을 완료했다.
사체의 검시겸안치소는, 구 후지오카시 시민 체육관으로 선정해 운반한다. 현지 군마 현 경찰의사회 소속 의사와 군마 현 의사, 군마대 의대, 도쿄치과대 교수, 법의학자, 법치학자, 치과의사, 간호사, 일본적십자 관계자 신원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기체 뒷부분의 시신은 식별이 쉬웠지만 기체 앞부분의 시신은 부패 진행도 빠르고 당시 DNA 감정 기술도 확립되지 않았을 때라 신원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최종적으로 신원확인 작업이 완료되기까지 약 4개월의 시간과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었다. 최종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시신은 같은 해 12월 군마현 시민회관에서 합동위령제로 발인식을 치렀으며 화장이 진행된 뒤 시신이 추락 현장 인근 군마현 우에노마을 위령원에 안장됐다. 부검 겸 안치소로 이용했던 후지오카 시 시민체육관은 시신의 부패 냄새가 가시지 않아 건물이 해체됐다.
사체 안치소
자위대 파견 지연=도쿄항공사무소장의 항공자위대 재해 파견 요청은 항공자위대가 세 번째 요청 독촉을 한 뒤인 20시 33분에 이뤄졌다. 항공 자위대에 재해 파견 요청이 사고기의 조난으로부터 약 1시간 40분 후에 출발하지 못한 배경에는, 운송청 도쿄 공항국 도쿄 공항 사무소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정식 출동 요청은 할 수 없다」라는 간부 지시와 운송청으로부터 「레이더로부터 사라진 지점을 특정하라」라고 몇번이나 도쿄 ACC에 전화가 들어가, 소관 행정 당국인 운송청 항공국 예하 조직의 고집에 의한 혼란이 있었다고 한다.
또 육상자위대도 군마, 나가노 부대가 19시 30분부터 출동태세를 준비하고 파견 요청에 대기했다. 육상자위대 파견 요청이 21시 30분으로 늦어진 이유는 육상자위대 입장에서는 항공자위대의 요청을 받아 출동할 필요성에 의문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행료 요구=사고 직후 자위대 부대가 비상소집 발령으로 출동해 고속도로를 빠져나갈 때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요구, 작업복 차림으로 출동하는 바람에 지갑을 휴대하지 않고 대원들이 조금씩 저축해 지불했다는 것. 사고 전부터 재해파견 시에는 증명서를 발급받아 무료통행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지만 부처간 조율에 의해 1986년 9월 1일부터는 차량표시로도 무료로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방사능문제사고기의 화물칸에는 의료용 방사능 동위원소 92개가 적재돼 있었다. 이들은 8월 14일부터 16일간 64.8%가 회수됐다.또 기체에는 진동을 방지하기 위해 열화우라늄 부품을 사용했다. 이런 방사성 물질이 추락에 따라 현장 주변으로 확산돼 방사능 오염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다. 이에 따라 수색작업을 벌이던 육상자위대 부대는 즉각 현장에 투입되지 말고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전 미 공군 중령 마이클 안토누치그의 수기가 1995년 8월 20일 The Sacramento Bee에 기재되고, 8월 27일 Pacific Starsan Dstripes에 게재된다. 이 수기를 바탕으로 일본 언론은 자위대가 미군의 지원을 거절했다며 자위대를 비판했다.
수기에 따르면 C-130에 탑승한 안토누치는 오키나와에서 요코타기지로 귀환하던 중 요코타 관제의 요청에 따라 JAL기의 레이더 소실 지점으로 향했다. 현장의 산속에서 화재를 발견해, 요코타 관제에 보고했다. 요코타 관제의 넨아쓰기시 기지로부터 미 해병대에 헬리콥터 UH-1이 향하고 있다고 듣고 20시 50분까지 헬리콥터의 빛이 확인되었다.
21시 05분 해병대로부터 C-130으로 연기와 불이 나 착륙이 불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조금 이동해 승무원 2명을 내릴 예정이었다. 해병대에서 C-130에 대해 사령부에 연락을 요청하고 안토누치가 연락했으나 장교에 의해 중지 명령을 받아 귀환 준비 중 21시 20분에 처음으로 일본 비행기가 나타났다. C-130의 승무원은 요코타에 도착 후 제861전투비행기의 부사령에 의해 123편에 대해 함구령이 내려졌다. Pacific Stars and Strips가 주일미군에 취재해 보지만 기록이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사토 마모루 전 방위청 항공막료감부 홍보실장은 미군 UH-1이 현장으로 향한 것은 사실이지만 항공자위대가 구조를 시작했기 때문에 방향을 바꾼 것이지 UH-1 탑승원이 산등성이로 내려가려 한 것은 아니다. 미 공군이 보유한 헬기는 리프트 기구나 대형 서치라이트가 갖춰져 있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 항공 자위대 중부 항공 방면대 사령관 마츠나가 사다아키는 미군의 일본 측에 대한 요청은 일반적인 지원 제공이 가능한 상태이며, 의료반을 집합시켜 헬리콥터 1대를 대기시키고 있다라는 연락이 20시 30분경, 지휘소에 있었을 뿐. 일본 측은 “아직 수색 중이니 그대로 대기시켜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군마현경 본부장 가와무라 가즈오는 민간항공기 구난의 경우 미군에 구난 요청을 하는 것은 구난조정본부가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 방위청 자위대는 그 권한이 없다. 안토누치의 수기에는 C-130이 현장 상공에 체류한 2시간 동안 일본 항공기를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나와 있으나 19시 21분 F-4, 20시 42분 KV-107이 21시 06분에는 아사히신문사 헬기가 현장 상공에 도착했다고 지적했다. 가와무라는 미군 헬기의 파견과 철수 움직임이 구난조정본부의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일미군은 대외적으로 확실히 하고 싶지 않은 것 아니냐고 추측했다.
[사고조사] 항공사고조사위원회(이하 사조위)는 8월 14일 추락현장에 들어가 본격적인 저인 조사를 시작한다. 조사에는 사고기 제조국인 미국에서도 NTSB(미국 국가운송안전위원회)도 참여한다.
생존자 진술=8월 12일 20시가 지나서야 사조위는 여름휴가에 즉시 투입할 수 없는 2명을 제외하고 조사관 전원에게 임시 소집을 한다. 저녁에 열린 제204회 조사위에서 본 사고의 조사관 16명을 지명한다. 추락 현장이 특정되지 않아 결국 아침까지 도쿄에서 대기한다. 13일 아침에 헬리콥터로 이동해 조사 활동을 시작한다. 13일 15시 병원에서 생존자 비번 승무원을 조사한다. 그녀는 “펑!”소리가 나더니 급강하가 일어나 귀가 좀 아팠어요. 문을 열지 못했는데 뒷천장이 떨어졌습니다」라고 진술한다.
블랙박스 수색=14일 5시 조사단은 1,565m 높이의 오스타카 산을 오르기 시작해 2시간 만에 수평 꼬리날개 잔해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조사단의 핵심 과제는 DFDR(디지털 비행기록장치)와 CVR(조종실 음성기록장치), 블랙박스를 찾는 것으로 동시에 수평미익의 상승타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였다. 14시 09분, 잔해의 약 1미터 아래에서 CVR가 20분 후 근처에서 DFDR를 발견해, 당일 헬리콥터로 지상으로 옮겨져, 순찰차로 도쿄에 보내졌다.
▲기체 꼬리 발견=8월 13일 18시 10분 사가미 항에서 마쓰유키 호위함이 기체 꼬리 부분의 일부를 발견하고 수거한다. 8월 14일 도착한 미국 조사단은 15일 사가미 항에서 발견한 파편을 시찰한다. 조사단은 리벳 구멍에서 유압 작동유가 유출된 흔적과 알루미늄 합금 외판이 매우 부풀어 오른 점에 주목한다. 수직 꼬리날개에 고압의 공기가 유입되어 파열되었음을 나타낸다. 고압공기를 만든 가장 높은 가능성이 압력격벽 파손으로 객실 내 여압공기가 수직 꼬리날개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됐다. 단지, 이 시점에서는 압력 격벽의 수리 미스는 발견되지 않았다.
▲수리 오류 발견=8월 16일 미국 조사단이 처음으로 현장을 투입하지만 시신 수습 활동이 진행 중이어서 압력 격벽 조사는 미뤄진다. 이후 태풍으로 인해 계속 악천후가 이어지다 22일에야 2차 현장조사를 시작한다. 실물 크기의 격벽도면을 펼쳐 조사한 결과 수리된 격벽의 일부에 한 줄만 리벳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발견된다. FAA(미국연방항공청) 기술고문 톰 스위프트는 수리착오로 금속피로 파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8월 24일 세 번째 조사에 들어간 미국 조사단은 복제품을 NTSB 본부에 보내 검사한 결과 스트라이에이션이라 불리는 금속 피로의 흔적을 발견한다.
8월 29일, 스위프트는 사고위원회 위원장에게 ‘시리모치 사고 후의 수리에 미숙에 의해 접속 강도가 큰폭으로 떨어져 이론 계산상, 수리 후 약 1만 4천회의 비행으로 압력 격벽이 파괴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이후 일본 조사단과 미국 조사단은 합동 조사를 벌인다.
보잉의 실수 인정=9월 6일, 보잉에 의한 실수가 미국측 조사로 판명되어 같은 날 보잉은 ’78년 시리모치 사고의 수리에서 격벽 이음매의 17%가 미비했다’고 성명 발표한다.
컴퓨터 분석과 파괴실험 컴퓨터 해석은 유한합니다소법에 의해 강도계산을 실시해 Nastran 을 이용했다. 미쓰비시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의 컴퓨터를 빌렸고, 상세한 설계 테이터는 NTSB를 통해 보잉에 제공해 달라고 요청해 제공받았다. 컴퓨터 분석은 압력 격벽 외에 수직 꼬리날개 APU 방화벽 부근에 대해서도 실시했다. 그 결과 압력 격벽에서 새어나온 고압 공기가 수직 꼬리날개로 순식간에 채워지면서 수직 꼬리날개의 등뼈에 해당하는 토크박스 외판이 떨어져 나간 것이 수직 꼬리날개 파괴의 시초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1986년 6월 25일, 항공우주기술연구소 조후비행장 분실에서 컴퓨터 해석 결과 검증을 위해 토크박스 파괴실험을 실시했다. 파괴실험에 사조위 조사관 외에 FAA 주재관도 참여했다. 실험은 토크박스를 최상단과 중앙에서 약간 아래 부분으로 두 개를 준비해 3대의 컴프레서로 공기를 보내자 비로소 리벳이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은 최상부 토크박스에서 내압을 3.88psi까지 올렸을 때였다. 4.5psi까지 올리면 컴프레서로 공기를 보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다. 하부 토크박스는 내압이 5.5psi가 될 때까지는 멀쩡한 것으로 실험에서 확인됐다.
한편 컴퓨터 분석 결과 APU 방화벽 부근은 2.2psi 정도로 파괴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APU가 탈락한 부분에서 공기가 새어 수직 꼬리날개를 파괴하는 4.5psi 이상의 내압이 남아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는 공기역학 전문가들이 기체 전제의 공기 흐름을 분석하기 위해 기체를 8개로 구분하고 압력격벽이 파괴된 개구부를 통해 공기의 흐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계산한다.
그 결과 압력 격벽 개구부 크기에 따라 압력 격벽 파괴 후 0.040.09초 후 APU 방화벽이 부서지기 시작하고 수직 꼬리날개가 부서지기 시작하는 데 0.2초가 걸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헬기는 압력 격벽이 무너진 지 0.3여 초 만에 APU, 수직 꼬리날개가 차례로 파괴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계산 결과는 DFDR에서 이상 발생 시 기체가 11t의 힘으로 앞으로 기울어져 아래로 내려갔는데 이는 계산에 의해 도출된 파괴 순서도 매우 일치했다.
▲생환 가능성 검증=사고 직후부터 123편이 우선회보다 참선회를 하고 바다에 착수했더라면 생환자가 많지 않았겠느냐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사고기는 하네다로 돌아가기를 희망하여 추락하였으나 생환가능여부 ANA항공사 소유 시뮬레이터를 이용하여 1986년 3월 4일,
[사고원인] 1987년 6월 15일 제286회 사고조사위원회에서 최종보고서안, 권고안, 건의안은 의결되어 본 사고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사고기의 후부 압력 격벽이 파괴되면서 잇따라 꼬리 부분, 수직 꼬리 날개, 조종 계통이 파괴돼 비행성 저하와 주 조종 기능 상실을 초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행 중 후방압력 격벽이 파괴된 것은 격벽 웹 접속부에서 진전된 피로 균열에 따른 격벽의 강도가 떨어져 비행 중 객실 여압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피로균열의 발생 및 진전은 1978년의 불결한 수리 때문이며, 이것이 격벽의 파손에 이르기까지 진전된 것은 이 균열을 점검·정비로 발견되지 않은 것도 관여했다고 추정된다.]
1986년 6월 19일 사고위원회는 사고조사보고서의 공표와 함께 운송대신에게 본건 사고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권고 및 건의한다.
권고 [항공사고로 인한 파손의 복구, 수리 등에 있어서는 항공기의 중요 구조부위 변경 등 대규모 수리가 해당 항공기의 제조공장 이외의 장소에서 행해진 경우에는 수리한 자에 대해 수리작업의 계획 및 작업관리를 상황에 특히 신중하게 진행하도록 지도를 철저히 할 것. 항공기 사용자에게 중요하고 그 부위에 대해 특별한 점검항목을 정하여 계속 감시할 수 있도록 철저히 지도할 것. 이번 사고에는 후부압력 격벽 파손에 따른 유출된 여압공기로 인해 꼬리부 동체, 수직 꼬리날개, 조종계통의 파손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였는데, 이러한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대형기의 후부압력 격벽 등 여압구조 부위 파괴 후에 주위구조, 기능시스템 등 페일세이프에 관한 규정을 내공성 기준에 추가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하였다.
건의 긴급 또는 이상사태에 대한 승무원의 대응능력을 높이기 위해 방책을 검토할 것. 이번 JA8119의 사고에서 승무원이 사태의 내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으며, 또 어떠한 대응과 판단을 내릴지 곤란하다. 이러한 경우에 승무원의 대응능력을 높이기 위한 방책에 관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항공기 정비 기술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육안 점검에 의한 균열 발견에 관해 검토할 것. 항공기 구조에 발생한 균열 발견은 육안점검을 통해 하는 경우가 많으나 육안점검에서 어느 정도의 균열을 발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충분한 자료가 없는 상황이다. 일본에서 운항하고 있는 운송기에 대하여 육안점검에 따른 균열발견에 관한 자료의 수집, 분석을 진행하여 항공기 정비기술 향상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
사고 후의 대책 여압 공기 유입에 따른 조종 시스템 파괴 방지책 NTSB는 사고 발생으로부터 약 4개월 후인 1985년 12월 5일 FAA에 대해 8항목의 개선 권고를 추진한다. NTSB의 권고에 대해 FAA는 B747 수직 꼬리날개에 여압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덮개를 달도록 의무화했다. 한편 꼬리가 파손되더라도 유압계통이 유실되지 않도록 제4 유압계통의 배관에 작동이 유출방지 장치가 장착되고 신형 항공기는 유압계통을 분산하도록 설계변경이 진행됐다.
후부압력 격벽의 설계변경 후부압력 격벽에 대해서도 설계의 재검토가 진행되어, 보잉은 강화형 격벽을 개발해, 후속의 B747-400에 강화형 격벽을 도입했다.
▲형사사건 조사=1985년 9월 군마현 경찰은 50명으로 구성된 수사본부를 설치해 학수사를 시작한다. 군마현 경찰은 보잉의 수리 담당자를 조사하려 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1988년 12월 1일 군마현 경찰은 보잉의 수리 담당자를 특정하지 못해 보잉 4명, JAL 12명, 운송청 4명 등 모두 20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지방검찰청에 송치한다.
1989년 11월 22일 마에바시 지검은 전원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되고 수사본부는 해산된다.
1989년 12월 19일 일부 유족이 검찰심사회에 불기소 부당을 제기했다.
1990년 4월 25일 검찰심사회는 JAL 직원 2명과 보잉 인력 2명은 불기소는 부당하고 나머지는 상당하다고 밝혔다.
1990년 7월 19일 지검은 재수사 결과 다시 4명을 불기소 처분했다. 1990년 8월 12일 공소시효가 완성된다.
2016년 8월 미 법무부는 보잉에 대해 일본 검찰 수사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주임 검사였던 린다 캔들러 변호사는 미국 정부가 핵심 산업인 보잉을 옹호하였다는 견해도 있으나 이를 분명히 부정하였다고 매스컴에 취재시에 증언하였다.
사고가 발생한 날은 월요일로 추석 연휴 전날 저녁 혼잡한 시간대 비행으로 비즈니스객과 귀성객이 많았다. 또, 여름 방학의 인원도 많아, 당시 개최된 츠쿠바 과학의 만전과 도쿄 디즈니랜드의 관광객 등, 거의 만석 상태였다. (일본인승객, 승무원 503명, 미국인승객 6명, 홍콩인승객 4명, 한국인승객 3명, 인도인승객 3명, 이탈리아인승객 2명, 독일인승객 1명, 중국인승객 1명, 영국인승객 1명) 중에는 연예계, 재계 유명인사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사카모토 아즈마 (가수) – NHK-FM방송 수록후 친구인 전 매니저의 선거응원차 방문중
기타하라 요코(여배우) – 오사카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나카노 하지메(한신전철 전무이사, 한신 타이거스 구단장), 이시다 가즈오(한신전철 상무이사) – 국토교통청 본청에서 열린 일본 국영철도협회 회의에 참석하고 귀국길에
이시노 기이치 (신에이 이시노 증권 대표이사 사장)
우라카미 이쿠오(하우스식품공업 대표이사 사장) –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이 마무리되고, 아버지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오사카로 향하던 중
츠카하라 나카아키(의학박사, 오사카 대학 교수) – 1986년부터 개시 예정인 문부성 특정 연구 「두뇌의 가소성」의 책임자로 문부성과 협의를 하고 돌아오는 도중,
츠지 마사노리(전 자전거 경기 선수, 시마노 레이싱 감독) – 그린피아 미키에서 열린 시마노 스즈카 로드 레이스 대회가 개최되어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케시타 모토아키(전 히로시마 프로야구 선수) 제67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군마현 대표 아들 응원차 고시엔구장으로 향하던 중
히모토 콜린 (동인지 만화가) – 11일 도내에서 개최된 코믹마켓에 만화지 관련 이벤트 참석하고 귀가 중
사고 후 8.12 연락회와 항공안전 국제조직위원회 본사사고 희생자 유족은 1985년 12월에 유족회인 8.12 연락회를 결성한다. 연락회는, 사고 원인의 구명과 항공 안전의 추진에 대해서, JAL이나 보잉 등 사고 관계자와 사회 전반에 호소하는 활동을 목적으로 해, 조직 내부에 원인 구명 부회나 기술 부회 등 부회를 설치해, 원인 구명과 항공 안전에 관한 독자적인 연구 활동을 실시한다.
기술부회는 후에 「항공 안전 국제 조직 위원회」라는 명칭으로 독립해, 항공 안전 토론회의 개최와 추락시의 충격을 완화하는 좌석 개발 제언등의 활동을 계속해 2009년 3월에는 국제적인 항공 안전에 공헌했다고 해서 NADA(전미 항공 참사 피해자 동맹)의 최고상 항공 안전상을 수상했다.
항공운송량 감소=사고가 난 1985년에는 국내선 여객이 전년도에 비해 2.1% 줄면서 항공사들의 경영이 악화됐다. 반면 신칸센 승객은 9.8% 증가했다.
안전 계발 센터 설치 2006년 4월 24일 도쿄 국제 항공 정비 지구에 일본 항공 안전 계발 센터가 개설되었다. 사고기 잔해는 경찰과 검찰의 사고 검증 이후 신도쿄국제공항 격납고 내에 저장됐다. 파기가 검토됐지만 812 연락회가 JAL에 청원해 보존하기로 했다.
[사고원인] 1987년 6월 15일 제286회 사고조사위원회에서 최종보고서안, 권고안, 건의안은 의결되어 본 사고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사고기의 후부 압력 격벽이 파괴되면서 잇따라 꼬리 부분, 수직 꼬리 날개, 조종 계통이 파괴돼 비행성 저하와 주 조종 기능 상실을 초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행 중 후방압력 격벽이 파괴된 것은 격벽 웹 접속부에서 진전된 피로 균열에 따른 격벽의 강도가 떨어져 비행 중 객실 여압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피로균열의 발생 및 진전은 1978년의 불결한 수리 때문이며, 이것이 격벽의 파손에 이르기까지 진전된 것은 이 균열을 점검·정비로 발견되지 않은 것도 관여했다고 추정된다.]
1986년 6월 19일 사고위원회는 사고조사보고서의 공표와 함께 운송대신에게 본건 사고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권고 및 건의한다.
권고 [항공사고로 인한 파손의 복구, 수리 등에 있어서는 항공기의 중요 구조부위 변경 등 대규모 수리가 해당 항공기의 제조공장 이외의 장소에서 행해진 경우에는 수리한 자에 대해 수리작업의 계획 및 작업관리를 상황에 특히 신중하게 진행하도록 지도를 철저히 할 것. 항공기 사용자에게 중요하고 그 부위에 대해 특별한 점검항목을 정하여 계속 감시할 수 있도록 철저히 지도할 것. 이번 사고에는 후부압력 격벽 파손에 따른 유출된 여압공기로 인해 꼬리부 동체, 수직 꼬리날개, 조종계통의 파손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였는데, 이러한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대형기의 후부압력 격벽 등 여압구조 부위 파괴 후에 주위구조, 기능시스템 등 페일세이프에 관한 규정을 내공성 기준에 추가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하였다.
건의 긴급 또는 이상사태에 대한 승무원의 대응능력을 높이기 위해 방책을 검토할 것. 이번 JA8119의 사고에서 승무원이 사태의 내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으며, 또 어떠한 대응과 판단을 내릴지 곤란하다. 이러한 경우에 승무원의 대응능력을 높이기 위한 방책에 관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항공기 정비 기술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육안 점검에 의한 균열 발견에 관해 검토할 것. 항공기 구조에 발생한 균열 발견은 육안점검을 통해 하는 경우가 많으나 육안점검에서 어느 정도의 균열을 발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충분한 자료가 없는 상황이다. 일본에서 운항하고 있는 운송기에 대하여 육안점검에 따른 균열발견에 관한 자료의 수집, 분석을 진행하여 항공기 정비기술 향상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
사고 후의 대책 여압 공기 유입에 따른 조종 시스템 파괴 방지책 NTSB는 사고 발생으로부터 약 4개월 후인 1985년 12월 5일 FAA에 대해 8항목의 개선 권고를 추진한다. NTSB의 권고에 대해 FAA는 B747 수직 꼬리날개에 여압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덮개를 달도록 의무화했다. 한편 꼬리가 파손되더라도 유압계통이 유실되지 않도록 제4 유압계통의 배관에 작동이 유출방지 장치가 장착되고 신형 항공기는 유압계통을 분산하도록 설계변경이 진행됐다.
후부압력 격벽의 설계변경 후부압력 격벽에 대해서도 설계의 재검토가 진행되어, 보잉은 강화형 격벽을 개발해, 후속의 B747-400에 강화형 격벽을 도입했다.
▲형사사건 조사=1985년 9월 군마현 경찰은 50명으로 구성된 수사본부를 설치해 학수사를 시작한다. 군마현 경찰은 보잉의 수리 담당자를 조사하려 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1988년 12월 1일 군마현 경찰은 보잉의 수리 담당자를 특정하지 못해 보잉 4명, JAL 12명, 운송청 4명 등 모두 20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지방검찰청에 송치한다.
1989년 11월 22일 마에바시 지검은 전원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되고 수사본부는 해산된다.
1989년 12월 19일 일부 유족이 검찰심사회에 불기소 부당을 제기했다.
1990년 4월 25일 검찰심사회는 JAL 직원 2명과 보잉 인력 2명은 불기소는 부당하고 나머지는 상당하다고 밝혔다.
1990년 7월 19일 지검은 재수사 결과 다시 4명을 불기소 처분했다. 1990년 8월 12일 공소시효가 완성된다.
2016년 8월 미 법무부는 보잉에 대해 일본 검찰 수사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주임 검사였던 린다 캔들러 변호사는 미국 정부가 핵심 산업인 보잉을 옹호하였다는 견해도 있으나 이를 분명히 부정하였다고 매스컴에 취재시에 증언하였다.
사고가 발생한 날은 월요일로 추석 연휴 전날 저녁 혼잡한 시간대 비행으로 비즈니스객과 귀성객이 많았다. 또, 여름 방학의 인원도 많아, 당시 개최된 츠쿠바 과학의 만전과 도쿄 디즈니랜드의 관광객 등, 거의 만석 상태였다. (일본인승객, 승무원 503명, 미국인승객 6명, 홍콩인승객 4명, 한국인승객 3명, 인도인승객 3명, 이탈리아인승객 2명, 독일인승객 1명, 중국인승객 1명, 영국인승객 1명) 중에는 연예계, 재계 유명인사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사카모토 아즈마 (가수) – NHK-FM방송 수록후 친구인 전 매니저의 선거응원차 방문중
기타하라 요코(여배우) – 오사카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나카노 하지메(한신전철 전무이사, 한신 타이거스 구단장), 이시다 가즈오(한신전철 상무이사) – 국토교통청 본청에서 열린 일본 국영철도협회 회의에 참석하고 귀국길에
이시노 기이치 (신에이 이시노 증권 대표이사 사장)
우라카미 이쿠오(하우스식품공업 대표이사 사장) –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이 마무리되고, 아버지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오사카로 향하던 중
츠카하라 나카아키(의학박사, 오사카 대학 교수) – 1986년부터 개시 예정인 문부성 특정 연구 「두뇌의 가소성」의 책임자로 문부성과 협의를 하고 돌아오는 도중,
츠지 마사노리(전 자전거 경기 선수, 시마노 레이싱 감독) – 그린피아 미키에서 열린 시마노 스즈카 로드 레이스 대회가 개최되어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케시타 모토아키(전 히로시마 프로야구 선수) 제67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군마현 대표 아들 응원차 고시엔구장으로 향하던 중
히모토 콜린 (동인지 만화가) – 11일 도내에서 개최된 코믹마켓에 만화지 관련 이벤트 참석하고 귀가 중
사고 후 8.12 연락회와 항공안전 국제조직위원회 본사사고 희생자 유족은 1985년 12월에 유족회인 8.12 연락회를 결성한다. 연락회는, 사고 원인의 구명과 항공 안전의 추진에 대해서, JAL이나 보잉 등 사고 관계자와 사회 전반에 호소하는 활동을 목적으로 해, 조직 내부에 원인 구명 부회나 기술 부회 등 부회를 설치해, 원인 구명과 항공 안전에 관한 독자적인 연구 활동을 실시한다.
기술부회는 후에 「항공 안전 국제 조직 위원회」라는 명칭으로 독립해, 항공 안전 토론회의 개최와 추락시의 충격을 완화하는 좌석 개발 제언등의 활동을 계속해 2009년 3월에는 국제적인 항공 안전에 공헌했다고 해서 NADA(전미 항공 참사 피해자 동맹)의 최고상 항공 안전상을 수상했다.
항공운송량 감소=사고가 난 1985년에는 국내선 여객이 전년도에 비해 2.1% 줄면서 항공사들의 경영이 악화됐다. 반면 신칸센 승객은 9.8% 증가했다.
안전 계발 센터 설치 2006년 4월 24일 도쿄 국제 항공 정비 지구에 일본 항공 안전 계발 센터가 개설되었다. 사고기 잔해는 경찰과 검찰의 사고 검증 이후 신도쿄국제공항 격납고 내에 저장됐다. 파기가 검토됐지만 812 연락회가 JAL에 청원해 보존하기로 했다.
사고 후의 추락 현장
많은 취재진이 사고 현장과 검시소의 생존자가 수용된 병원, 유족 집 등에 쇄도하고,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 추락 현장에 들어가 조각난 승객의 시신이 밝은 반면, 8월 13일 18시 10분, 마에바시 지국장은 ‘어젯밤부터 산에 들어간 직원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수색을 의뢰하거나 지방 방송국이나 사진 주간지 등 기자 몇 명은 움직일 수 없으니 헬기로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가뜩이나 부족한 헬기를 동원해 구조했다고 한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우에노동사무소 보건센터 3층을 거점으로 하고 있지만 출입금지에도 불구하고 취재진은 연일 심야까지 몰려 조사관들이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일부 기자는 후지오카 시 시민체육관 창틀로 올라가거나 인근 NTT의 철탑에서 망원렌즈로 안을 몰래 촬영하려다 체육관에 어두운 커튼을 쳐야 했다. 이로 인해 체육관 내 온도는 40도에 육박해 검시활동에도 지장을 초래했다.
입원 치료 중이던 생존자들을 접촉하려고 이들의 지인이나 친척 행세를 하거나 의사 가운을 입고 행세하는 등 신분을 속여 병실에 침입하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어 ICU 맞은편에 있는 병원 건설현장에 무단 침입해 병실에서 수술실로 이동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부모와 여동생이 사고를 당해 혼자 집에 남겨진 중학생 아들의 집에 무작정 들어가 관을 열고 사진을 찍는 몰상식한 기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