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응고제 vs 항혈소판제

[약 이야기] 같은 뇌졸중 환자인데 사용하는 항혈전제는 왜 다른가요?[중앙일보 헬스미디어] 입력 2019.11.0116:28

https://jhealthmedia.joins.com/article/article_view.asp?pno=21040#102 혈전 종류에 따른 항혈전제 구분사진 크게 보기

일러스트 최승희 choi.s [email protected]의 박모 씨(68)는 어느 날 오른팔이 마비돼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결과 뇌 왼쪽 부위의 혈관이 막힌 뇌경색으로 진단됐습니다. 한모 씨(72)는 길을 걷다가 갑자기 온몸이 굳어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진단 결과 박 씨처럼 소뇌 부위의 혈관이 막힌 뇌경색이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두 사람 모두 뇌경색의 재발을 막기 위해 항혈전제를 복용하고 있습니다. 항혈전제는 혈관내 혈전이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하는 약으로 급성 심근경색·뇌졸중 같은 심뇌혈관질환 예방에 사용됩니다. 하지만 박씨와 한씨는 다른 종류의 항혈전제를 먹습니다. 박 씨는 항응고제를, 한 씨는 항혈소판제를 복용합니다. 마찬가지로 뇌경색을 앓고 있는데 각기 다른 약을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번 주 약 이야기부터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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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사망원인 2, 3위를 차지하는 심장질환과 뇌졸중은 모두 혈전(피떡)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입니다. 혈전은 ‘피의 마개’라는 뜻인데 혈관 속을 흐르는 혈액 일부가 뭉쳐서 생긴 덩어리를 말합니다. 혈전이 쌓이게 되면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혀 혈액 순환을 방해하게 됩니다. 산소와 영양소 공급이 중단되고 심근경색, 뇌졸중 등 치명적인 질환이 발생해 빠르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사실 혈전은 손상된 혈관을 복구하기 위한 과정에서 형성되는 즉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존재입니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딱지가 생기듯이 혈관이 손상되면 출혈을 막기 위해 혈소판과 혈액응고인자가 뭉쳐서 혈전을 만듭니다. 문제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으로 혈관이 약해진 환자들은 이런 혈전이 너무 많이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혈전으로 인해 심뇌혈관 질환을 한 번 경험한 환자는 이미 혈관이 나빠질 정도로 나빠진 상태이기 때문에 특별히 약물을 드셔서 혈관 건강을 관리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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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전의 종류에 따라 약물도 달라지는데 항혈전제는 왜 항혈소판제, 항응고제 두 가지가 개발이 됐을까요? 그것은 심뇌혈관질환의 종류, 보다 구체적으로는 동맥, 정맥 등 혈관에 의해 만들어지는 혈전의 종류가 다르고 이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약물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동맥에 문제가 있을 때 발생하는 급성심근경색, 협심증, 뇌졸중은 항혈소판제를, 정맥문제로 인한 심방세동, 심부정맥혈전증에는 항응고제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치료효과가 큽니다.

혈전은 같은 핏덩어리지만 어느 혈관에서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생성 과정은 물론 색깔도 달라집니다. 실제로 동맥혈전은 흰색이 돌고 백색혈전, 정맥혈전은 붉은색을 띠며 적색혈전이라고 부릅니다. 동맥은 심장이 내뿜는 혈액이 전신으로 나오는 ‘길’로 흐르는 혈액량도 많고 혈류 속도도 빠릅니다. 그만큼 혈관이 손상되기 쉬운데 이때 상처를 메우고 백혈구와 혈소판이 빨리 응집해서 만들어지는 게 백색혈전입니다.

반면 정맥에서 만들어지는 적색 혈전은 혈액이 쌓이는 것이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맥은 심장으로 돌아가는 혈액이 흐르는 길로 혈관의 압력이 거의 없고 혈류 속도도 느립니다. 특별한 상처가 없어도 혈액 속 혈소판이 달라붙으면서 커지게 되고 여기에 혈액응고인자가 쌓여서 적색혈전을 형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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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혈전제 병용요법 연구속도 적색혈전과 백색혈전을 없애려면 각각 혈소판, 혈액응고인자라는 주요 ‘재료’의 작용을 억제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동맥, 정맥 등 문제가 되는 혈관에 따라 항혈소판제와 항응고제 등 다른 치료제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심뇌혈관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하면 심장초음파·심전도·MRI검사 등 다양한 검사가 이루어지는데, 이를 통해 어느 혈관에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약물을 사용하게 됩니다. 뇌졸중의 경우 ▶동맥에서 떨어진 백색혈전이 뇌혈관을 막거나 ▶정맥(심장)에 고인 혈액이 적색혈전이 되어 뇌로 이동하는 경우 양쪽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같은 뇌졸중으로 한 명은 항혈소판제를, 다른 한 명은 항응고제를 복용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심뇌혈관질환을 완벽하게 예방하기 위해서는 혈소판과 혈액응고인자 작용을 모두 억제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항혈소판제와 항응고제를 사용한 환자가 동시에 복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심뇌혈관질환 예방 효과와 함께 출혈 등 부작용 위험도 함께 커지기 때문입니다. 혈소판과 혈액응고인자를 하나만 억제해도 출혈 위험이 큰데 이를 모두 억제하게 되면 장기나 혈관이 손상됐을 때 이를 복구하기 어려워지고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사진을 크게 보다

다만 최근 들어 이런 출혈 부작용을 감소시킨 약이 등장하면서 항혈소판제, 항응고제 동시 사용에 대한 연구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와파린의 뒤를 이어 개발된 항응고제 ‘NOAC’는 특정 혈액응고인자에게만 작용하고 혈전 억제작용은 유지하면서 출혈 부작용은 줄였지만 최근 동맥질환을 앓은 환자에게 항혈소판제와 ‘NOAC’를 함께 사용할 경우 출혈 위험은 비슷한 반면 동맥혈전 예방효과는 높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부작용 없이 약으로 전신 혈관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날이 올지 기대가 되네요.

도움말 : 강동성심병원 심장혈관내과 서원우 교수,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박재현 교수, 고려대 구로병원 신경과 김치경 교수,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권순옥 교수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다루고 ‘약 이야기’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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