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0년5월25일 조지 플로이드의 과잉진압 사망사건을 계기로 Blacklivesmatter라고 불리는 대규모 흑인에 의한 시위가 일어났다. 그동안 경찰의 유색인종에 대한 과잉 진압 논란이 이어졌는데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확산 등의 불만 등이 폭발한 것이다. 이에 전 세계 유명인은 물론 여러 단체, 기업 등에서도 이를 지지하는 등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흑인들의 심각한 약탈행위, 동양인에 대한 차별, 추모에 대한 강요, 그리고 폭력행위 등으로 인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측면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 2020년 6월 19일게임 팬들이 바라온 너티독 라스트 오브 어스(이하 라오아) 후속작이 7년 만에 출시됐다. 하지만 명작으로 칭송받았던 전작과 달리 이용자들의 엄청난 비판에 휩싸였다. 게임 시스템과 액션은 발전했지만 라오스의 생명과 같은 스토리가 페미니즘과 PC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이에 라오어의 디렉터 닐 드러그먼은 사용자 의견을 무시하고 리뷰어에 외압을 가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전 세계 인권운동 흐름은 페미니즘에서 PC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페미니즘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PC, 즉 Political Correctness란 정치적 올바름을 의미한다. 언어와 행동에 있어 인종·성별·종교·성적 지향·장애 등의 약자를 차별하지 않는 운동으로 주로 차별을 나타내는 언어를 고쳐 쓰자는 것과 영화를 만들 때 표현과 주인공 선정 등에서 차별을 없애자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제는 거의 모든 인권운동을 총칭하는 말이 되고 있다.
사실 의미만 놓고 보면 PC는 장려돼야 할 운동이다. 그러나 이런 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넘어 더 차별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왜일까.
- 그들이 컴퓨터에 반대하는 이유.
- 위에서 언급한 대표적인 예인 ‘라오스어2’를 살펴보자. ‘라스트 오브 어스’라는 게임은 이미 게임계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명작이었다. 그런데 2편에서 이오아는 잔혹한 평가를 받게 된다.
- 재미있는 사실은 라오어는 전편에서도 PC적인 주제를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엘리나의 도우미들이 동성애자라든가 거대한 집단의 수장들이 대부분 여성이었다.
- 그럼에도 라오아가 명작으로 평가받은 것은 그런 요인은 단순히 곁다리에 불과했고 엘리와 조엘의 부성애 같은 가족애를 스토리로 너무 잘 그려냈기 때문이었다.
- 문제는 2탄 들어 이 모든 것을 깨뜨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게임 스토리상의 이유가 아니라 컴퓨터를 강조하기 위해서.
※ 이 사진은 마블 유니버스와는 상관없다.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마블 유니버스를 예로 들면 엔드게임 직전까지 기대감을 높이고, 엔드게임 엔딩에서 타노스를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가 두 손을 잡고 ‘사랑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합니다’와 같은 개그를 날리며 사랑의 힘으로 타노스를 부순 식이다. 캡틴 마블로 욕을 먹은 마블 유니버스조차도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게임이든 콘텐츠 분야에서 PC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판을 받느냐 마느냐의 차이는 그 사상을 콘텐츠에 얼마나 잘 녹여내면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라오스어 사례처럼 본질을 침해하면서까지 PC 사상을 주입시키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넷플릭스 위처, 디즈니 인어공주 실사화 등 PC가 작품 본연의 색상까지 위협하는 경우는 너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 사례는 게임과 영화를 꼽았는데, 이런 사례가 PC에 대한 반발을 키우는 단적인 예다. 모두를 평등하게 다루자는 PC 운동이 아이러니하게도 본질을 침해하고 평등하지 않은 또 다른 차별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흑인 인권운동을 살펴보자. 물론 대다수 시위에서 백인, 동양인, 흑인을 막론하고 Blacklivesmatter를 외치지만 실제 이곳에 참가한 사람들은 약탈을 일삼고 지나가는 백인들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등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님이 점점 더 드러나고 있다. 이들 대다수가 원하는 것은 흑인에 대한 처우 개선과 분노이지 인류평등의 인류애가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나아가 그들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등 극단화하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PC가 변질되는 이유. 컴퓨터는 돈과 권력이 된다.
PC운동도 시작은 온건하면서도 전인류애적인 운동이었을 것이다. 그런 PC가 이렇게 변질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이것이 돈과 권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들이 힘을 갖는 이유도 간단하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힘의 원천은 다수의 동일한 의견을 가진 집단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의사결정의 원리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해도 자본주의에서도 다수가 중요한 이유는 시장성 문제가 가장 크다.
과거 노동자나 소비자의 의견과 상관없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일 수 있었던 초기 자본주의 시대와 달리 지금은 기업이 다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시대다. 사회적 기업과 같은 캠페인이 기업의 수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도 신경을 쓰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컴퓨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힘을 갖는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적’이다.
미통당 인사들이 총선 때 만든 홍보자료적으로는 정치의 필수 요건이다. 국내만 봐도 오랫동안 미통당에 열세였던 민주당이 우세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과 ‘박근혜’이라는 뚜렷한 적을 설정한 뒤부터다. 미 통당의 경우 종북좌파와 북한을 적으로 설정했지만 이런 타깃은 이미 유권자에게 통하지 않기 때문에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 적이 정당하든 정당하든 아니든 일반적으로 차악을 뽑는 선거라는 시스템에서는 적이 확실한 것이 유리하다.
컴퓨터는 차별주의자가 적이다. 그러나 지금 시대처럼 차별주의자가 적은 세상에서는 (여전히 존재는 하나 당당할 수 없는 시대이므로) 또 다른 적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적이 남성 백인 등 특정 계층을 적으로 삼는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인종 차별주의자들은 적대할 충분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지만, 한 계층을 적대할 경우 정당성을 잃게 된다.마치 히틀러를 반대하는데도 현재의 독일 국민을 욕하는 듯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심지어 과거에는 적대적 입장에 있던 자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PC를 옹호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그런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단죄의 대상이 돼버린 대다수 계층이다. 페미니즘과 관련해 젊은 20대가 거부감을 드러내고 처음부터 혐오의 감정까지 드러내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다. 자신은 혜택은커녕 피해만 보고 있는데 희생까지 당하기 때문이다.
현재 흑인 인권운동의 예를 들어보자. 이번 사건의 원흉이 된 미국 경찰의 경우, 그리고 이를 간과한 미국 경찰청의 경우 사건의 당사자다. 그러나 이 시위로 자신의 상점이 부서져 갑자기 흑인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고 심지어 폭력까지 당하는 사람들은 전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이 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적이 있다는 것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물리적 폭력은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 무고한 일반인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이것이 PC라는 운동의 현주소이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로 젊은 층에 모여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 All lives matter
-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사람은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물론 범죄를 저지르는 등 일부 사람들은 예외가 되겠지만 인간답게 살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
- PC는 분명 의미만큼은 올바른 운동이다. 성별 인종 국적에 관계없이 사람은 사람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컴퓨터는 아무렇지도 않다.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초등학생들도 알아야 할 이론을 마치 자신들만 아는 신념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이를 비난하면 그들을 교육시키려 하고 혐오한다. 차별주의자들은 교육도 받지 않은 인간이지만 지금 컴퓨터가 하는 행동 역시 패악질이다.
나는 흑인 인권 운동이나 페미니즘 운동, LGBTQ를 위한 인권 운동 등을 부정할 생각이 아니야. 이들이 인종, 성별, 취향에 따라 차별받는 것은 분명 문제이며 이런 것이 당연치 않게 되는 것이 올바른 세상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관계없는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의 PC 운동이 과연 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컴퓨터 운동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마치 차별주의자로, 혹은 교육받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자신들의 우월감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단순히 일부로 치부할 수 있을까.
BLM(Black livesmatter)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흑인 차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의 삶의 중요성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미국에서 1만km나 떨어져 있는 내 입장에서 확 다가갈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가 인종차별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이 흑인 인권 문제를 해결한 뒤 과연 차별받는 동양인, 성소수자, 나아가 역차별을 받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면서 평등한 사회로 만들어 나갈까.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본 바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당장 여성보다 흑인 남성이 먼저 선거권을 얻었다고 인종차별 발언을 한 1세대 페미니스트처럼 이들은 또 다른 차별을 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인생은 동등하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이 간단한 명제가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PC 운동은 사실 이뤄지지 않는 꿈을 쫓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속에서 누군가는 조용히 웃고 있을 것이다.